변화의 주역, Generalist와 Specialist

5.16은 쿠데타임에 틀림없지만, 실제로 그 사건이 가지는 의미는 혁명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교과서적인 의미에서 혁명은 미래의 생산 시스템의 주역이 과거의 생산 시스템의 주역을 타도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하고, 과거의 생산 시스템에 의하여 묶여 있던 생산력의 발달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다.
 
5.16은 그런 점에서 남한의 자본가 계급이 아직까지도 지주 계급이 장악하고 있던 주도권을 확실하게 뺏어왔다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본다. 해방 이후 토지개혁에 의해 대다수 지주 계급이 몰락하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산업 자본가로서의 변신을 꾀하지만 남한 사회가 완전히 자본주의적 질서에 의해 통일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5.16은 그렇게 불완전한 과정, 자본주의 계급의 권력 장악을 완성시켜준 사건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은 대부분의 경우 국가 시스템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테크노크라트 등 훈련받은 인텔리겐차를 동원하여 대리 지배하는 방식을 선택하기 쉽다. 이것이 자본주의와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를 결합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단계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남한의 경우 식민지 시대와 해방, 한국전쟁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테크노크라트 계층을 충분히 양성하지 못했다. 일본이 도입한 근대식 교육제도와 일본 유학 등으로 양성된 인력이 있었지만, 이들은 양적/질적으로 남한이라는 국가 경영을 책임질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역사적인 격변에 의해 국가 경영을 맡을만한 권위를 인정받지도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분단과 이념 대립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반드시 요구되는 물리적 강제력의 확보와 발휘 등에 대해서도 경험이 없었다.
 
군사 정권의 등장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필연적이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군부는 당시 가장 대규모로 체계적인 근대식 교육 커리큘럼에 의해 교육 받은 집단이었고, 상하 위계질서와 물리적 제재를 특징으로 하는 조직적인 훈련도 충분히 받은 상태였다. 분단 국가 특유의 경직된 정치 경제 사회적 분위기를 제어할 수 있는 물리적 강제력도 확보한 집단이었다.
 
그런 점에서 군부 정치는 미국 그리고 그 미국과의 파트너 관계를 강화하고 있던 남한 자본가 계급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적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또 하나, 군부가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집단, 엘리트 그룹이 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이들이 직업적으로 종합적인 경영 능력을 요구받는 그룹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군부는 기본적으로 지배 계급의 훈련을 받는 집단이다. 육사 등 사관학교 교육 과정의 모델은 근세 이후 서양의 귀족 사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Generalist로서의 소양이 강조된다. 병과에 따라 Specialist 즉 자기의 전공 분야를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급 지휘관으로 갈수록 이러한 전문가 그룹보다는 제너럴리스트의 자질이 더욱 요구된다. 지휘관의 자질은 스페셜리스트보다 제너럴리스트로서의 그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에서 미래의 지배계급으로 상정하는 노동자 계급도 기본적으로 제너럴리스트로서의 훈련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역시 자신의 노동의 성격에 따라 스페셜리스트의 특성을 갖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산업혁명 이후의 공장 노동은 노동별 업무 차이를 최소화한다는 특성이 있다. 이것은 소품종 대량생산 시대의 필연적인 요구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제너럴리스트로서의 특성이 더 본질적인 것이다.
 
물론 지식혁명 이후에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특성이 강화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예외적인 경우라고 보이고, 일반화되기 어려운 사례의 의미를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또한 정말 다품종 소량생산이 일반화되고 그러한 생산 시스템이 요구하는 스페셜리스트 집단이 크게 늘어난다 해도 그들은 노동자 집단 일반의 계급적 정체성을 갖기 어렵다고 본다. 한마디로 말해 혁명의 주역으로서는 함량 미달 또는 자격 부족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레닌이 노동자 계급의 주도성과 투쟁을 강조하면서도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목적의식적으로 조직화된 직업적 혁명가 집단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강조한 것도 노동자 계급이 자칫해서 조합주의 즉, 자신들만의 경제적 이익에 함몰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지만 이것도 노동자 계급이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소승적인 자기 정체성에 주저앉을 것을 경계한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역사적으로 어떠한 집단도 혁명적인 의미와 의식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 계급이나 집단 등이 모두 혁명의 주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계급적 특성, 물적 기반, 사회적 위상 등이 그들에게 강제하는 정체성이 부인할 수 없는 제약 또는 한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레프트, 좌파... 어떠한 미래를 꿈꾸는가, 그 미래의 그림이 어떠한가의 논의는 별개로 치고 일단 좌파라면 현실 상황과 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꿈꾼다. 그리고 그 변화에 대한 구상에는 그 변화를 담당하고 책임질 미래의 주역에 대한 고려가 일차적으로 작용한다.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혁명의 주체 문제를 놓고 그렇게 숱한 논쟁과 고민과 노선투쟁과 갈등을 거듭한 것도 그냥 갈등과 분열이 좋아서가 아니고 그것이 좌파 또는 혁명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는 언제 어느 시대에나 함께 존재하고, 함께 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둘은 영원한 갈등 관계이다. 이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 집단, 국가, 사회의 운명이 갈린다고 할 수도 있다.
 
스페셜리스트는 일의 우선 순위에 간여해서는 안 되고, 그 일은 제너럴리스트가 맡아야 한다. 반면 제너럴리스트는 스페셜리스트가 일하는 방식에 대해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가 함께 일하는 가장 기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스페셜리스트 집단은 그 집단의 요구가 충족되면 그 이후에는 혁명과 개혁에 대해 팔짱 끼고 관망하거나 심지어 적극적인 방해 세력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 숱한 사례에 대해 굳이 예를 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국은 현재 국가 경영을 책임지는 핵심 집단이 부재한 상태라고 봐야 한다. 다양한 스페셜리스트 집단이 각각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집단적 이익을 챙기기 위한 것이고 국가 경영 전체의 진로에 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제널럴리스트 집단 그리고 그 집단의 역할과 책임을 논증하는 거대 담론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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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오스 | 2008/07/29 12:46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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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Jeff at 2008/07/29 17:19
생각할거리가 많은 글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Commented by procol at 2008/07/29 22:53
이글루스에서 보기 쉽지 않은 글이군요. 하긴, 90년대 중반 이후로 이런 글 자체가 젊은이들의 공간에서 사라졌죠. 재벌, 계급, 자본, 노동자, 혁명이라는 단어들을 반추해야 하는 세상이 다시 올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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