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29일
이명박, 니가 세월을 거꾸로 돌릴 셈이냐?
80년대 내내 그랬다.
신문과 TV, 공무원, 지식인, 학교... 모두가 하나같이 빨갱이라며 욕했다.
그러니 그 빨갱이들, 갈 곳이 없어 영세한 출판사 만들어 이념서적 만들었다.
컴퓨터란 것은 상상도 못했던 시대다. 타자기 한 대 있으면 최첨단 장비를 갖춘 셈이었다.
그 타자기로 탁탁거리며 찍은 문서를 등사기로 긁어 읽기도 힘든 유인물 만들어 뿌렸다.
나중에야 을지로 어디선가 몰래 찍어주는 곳이 생겨서 품질이 좋아졌지만...
80년대 후반 들어서니 복사기가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유인물의 제작은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유인물 제작도 그렇지만, 배포도 만만치 않았다.
남민전 선배들이 썼던 방법이라고 했다.
유인물을 줄로 묶고 거기에 약쑥을 달았다.
몰래 건물 옥상이나 높은 곳에 올라가 유인물 뭉치를 설치하고 약쑥에 불을 붙였다.
몸을 피해 좀 떨어진 곳에 가서 지켜보면 약쑥의 불로 줄이 끊기고, 유인물이 길거리로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이 방법은 그다지 성공률이 높지 못했다.
무엇보다 감시가 심해져서 5.18같은 때나 대규모 집회가 예상되는 경우에는 고층 건물 옥상의 출입이 차단되고, 건물 자체에도 경찰들이 늘어서서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감시하곤 했다.
P(Paper, 유인물) Sale이라고, 밤중에 유인물 뭉치 들고다니며 가오리(가리봉오거리) 일대에서 노동자들의 닭장집(거의 양계장 수준이었다. 한두 평이나 되려나?)에 몰래 집어넣곤 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고, 여전히 빨갱이들이라 욕하는 노동자들이 더 많았다. 심지어 데모 현장의 그 독한 최루탄을 경찰이 아닌 데모대가 뿌려대는 것으로 알고 있는 10대 소녀 노동자를 만난 적도 있었다.
80년대 중반, 아마 전두환 집권기였을 거다.
광주학살 문제가 워낙 시끄러우니까 당시 국방장관이란 시키가 TV에 나와 소위 광주사태에 대한 진실이랍시고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새끼, 패배(敗北)를 '패북'이라고 계속 읽는 것이었다. 광주항쟁 당시의 택시기사들의 시위를 설명할 때는 "택시 운전병들이...어쩌구저쩌구"
피가 끓었다. 상사의 수준을 짐작 못하고 한자를 그대로 써준 비서관을 욕해야 할 것인지... 저런 새끼들이 나라의 목줄을 쥐고 사람들을 개잡듯 패고, 죽이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치를 떨었다.
그런 세월 속에서도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진실은 퍼져갔다. 그리고 적들을 굴복시켰다. 적들이 완전히 패배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진실을 거부하고 외면하는 자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그 거짓이 진실로 통용되는 상황 속에서 밥줄을 얻고, 그걸 자랑스러워하는, 거짓 상황에서 잘 팔리는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자들이 많다. 그 자들의 숫자가 더욱 많아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명박은 여전히 80년대식 수법에 호소한다. 시대가 변했지만 결국 이명박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 수법이 통할까?
타자기로 찍어서 등사기로 긁어서 밤중에 몇몇 젊은이들의 손과 발에 의지해 날랐던 그 진실이 10년이 지나기 전에 세상을 뒤집었는데, 몇십만 몇백만의 사람들이 디카로 찍고 컴퓨터로 써서 인터넷으로 실어나르는 진실이 과연 과거보다 무기력할까?
정말 그렇다면 그것은 지금 촛불을 든 사람들이,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이 정말 지난 10년간을 허송세월했다는 얘기다. 실은 군사정권 아래서도, 파쇼 매국노들 아래서도, 아니 짱꿰나 쪽발이들이 다시 이 나라를 지배해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 인종들이라는 얘기다. 지난 10년은 이 나라 이 백성들에게 사치였다는 얘기다.
그 진실이 지금 드러나고 있다. 진실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아니, 궁금하지 않다.
진실은 이미 진실 그 자체인데, 내가 안다고 해서 또는 모른다고 해서 변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 궁금하지 않다. 다만
그냥 이대로 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새길 뿐이다.
신문과 TV, 공무원, 지식인, 학교... 모두가 하나같이 빨갱이라며 욕했다.
그러니 그 빨갱이들, 갈 곳이 없어 영세한 출판사 만들어 이념서적 만들었다.
컴퓨터란 것은 상상도 못했던 시대다. 타자기 한 대 있으면 최첨단 장비를 갖춘 셈이었다.
그 타자기로 탁탁거리며 찍은 문서를 등사기로 긁어 읽기도 힘든 유인물 만들어 뿌렸다.
나중에야 을지로 어디선가 몰래 찍어주는 곳이 생겨서 품질이 좋아졌지만...
80년대 후반 들어서니 복사기가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유인물의 제작은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유인물 제작도 그렇지만, 배포도 만만치 않았다.
남민전 선배들이 썼던 방법이라고 했다.
유인물을 줄로 묶고 거기에 약쑥을 달았다.
몰래 건물 옥상이나 높은 곳에 올라가 유인물 뭉치를 설치하고 약쑥에 불을 붙였다.
몸을 피해 좀 떨어진 곳에 가서 지켜보면 약쑥의 불로 줄이 끊기고, 유인물이 길거리로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이 방법은 그다지 성공률이 높지 못했다.
무엇보다 감시가 심해져서 5.18같은 때나 대규모 집회가 예상되는 경우에는 고층 건물 옥상의 출입이 차단되고, 건물 자체에도 경찰들이 늘어서서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감시하곤 했다.
P(Paper, 유인물) Sale이라고, 밤중에 유인물 뭉치 들고다니며 가오리(가리봉오거리) 일대에서 노동자들의 닭장집(거의 양계장 수준이었다. 한두 평이나 되려나?)에 몰래 집어넣곤 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고, 여전히 빨갱이들이라 욕하는 노동자들이 더 많았다. 심지어 데모 현장의 그 독한 최루탄을 경찰이 아닌 데모대가 뿌려대는 것으로 알고 있는 10대 소녀 노동자를 만난 적도 있었다.
80년대 중반, 아마 전두환 집권기였을 거다.
광주학살 문제가 워낙 시끄러우니까 당시 국방장관이란 시키가 TV에 나와 소위 광주사태에 대한 진실이랍시고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새끼, 패배(敗北)를 '패북'이라고 계속 읽는 것이었다. 광주항쟁 당시의 택시기사들의 시위를 설명할 때는 "택시 운전병들이...어쩌구저쩌구"
피가 끓었다. 상사의 수준을 짐작 못하고 한자를 그대로 써준 비서관을 욕해야 할 것인지... 저런 새끼들이 나라의 목줄을 쥐고 사람들을 개잡듯 패고, 죽이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치를 떨었다.
그런 세월 속에서도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진실은 퍼져갔다. 그리고 적들을 굴복시켰다. 적들이 완전히 패배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진실을 거부하고 외면하는 자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그 거짓이 진실로 통용되는 상황 속에서 밥줄을 얻고, 그걸 자랑스러워하는, 거짓 상황에서 잘 팔리는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자들이 많다. 그 자들의 숫자가 더욱 많아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명박은 여전히 80년대식 수법에 호소한다. 시대가 변했지만 결국 이명박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 수법이 통할까?
타자기로 찍어서 등사기로 긁어서 밤중에 몇몇 젊은이들의 손과 발에 의지해 날랐던 그 진실이 10년이 지나기 전에 세상을 뒤집었는데, 몇십만 몇백만의 사람들이 디카로 찍고 컴퓨터로 써서 인터넷으로 실어나르는 진실이 과연 과거보다 무기력할까?
정말 그렇다면 그것은 지금 촛불을 든 사람들이,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이 정말 지난 10년간을 허송세월했다는 얘기다. 실은 군사정권 아래서도, 파쇼 매국노들 아래서도, 아니 짱꿰나 쪽발이들이 다시 이 나라를 지배해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 인종들이라는 얘기다. 지난 10년은 이 나라 이 백성들에게 사치였다는 얘기다.
그 진실이 지금 드러나고 있다. 진실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아니, 궁금하지 않다.
진실은 이미 진실 그 자체인데, 내가 안다고 해서 또는 모른다고 해서 변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 궁금하지 않다. 다만
그냥 이대로 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새길 뿐이다.
# by | 2008/06/29 19:47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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