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이후의 전망

과거의 시위 등 반정부 투쟁이나 정치 투쟁은 일종의 이슈 파이팅(issue fighting)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따라서 특정 사안의 처리가 어떻게 되느냐, 정부측의 대응이 어떻게 나오느냐, 특정 이벤트(군중대회 등)의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전체 투쟁의 수위가 크게 요동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촛불집회의 경우 표면적인 이슈는 쇠고기 문제지만 그 기반에는 이명박 정권의 성격에 대한 광범위한 혐오와 불만, 불안감이 깔려있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이명박정권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대중이 본능적으로 알아채버린 겁니다. 따라서 현재의 대중투쟁에는 정권의 본질에 대한 반대가 깔려있다고 봅니다.

이번 촛불시위는 서서히 또는 급격하게 사라져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제 공이 이명박 정권에 넘어가 있는 상황이죠. 이명박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향후 진행방향이나 속도 등이 달라지겠죠.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미 주도적으로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우선 우파 진영 내부에서 이명박의 리더십과 주도력이 급격히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정두언 사태야 가장 대표적인 것이지만 그밖에 범우파 진영에서 나오고 있는 이명박 짓밟기 발언 등을 보십시오. 최소한 자기 진영 내부는 단속할 수 있어야 상황 반전이 가능한데...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사실 지금 반이명박 진영은 굳이 촛불집회를 계속 끌고갈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으로선 적당히 대오만 유지하면서 정권측 대응을 지켜보는 게 제일 좋습니다. 저는 오히려 촛불집회가 너무 오래 계속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피로가 누적되는데다가, 이슈를 협소화하는 역효과도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럴 경우 정부측으로서는 어떤 형태로건 전선을 쇠고기로 묶어둘 수 있고, 시위 대응이야 어차피 폭력 시위로 발전할 가능성도 없으니 적당히 막아가면서 여론의 방향이 바뀌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휴식하면서 숨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거죠.

하지만 지금 촛불집회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정부는 자기들이 주체적으로 뭔가 대응방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지금 이상득, 정두언, 박근혜, 조중동, 재벌 등 범보수 진영 내부에서 백가쟁명 사태가 시작되는 것이 이들이 처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단일 지도부가 사라지면서 대응 방안을 놓고 각자가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범보수 진영이 사태를 잘 수습한다 해도 이번 촛불집회는 반이명박 진영의 엄청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범보수 진영의 장수를 쏘아 낙마시킨 셈이니까요(낙마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상). 박근혜는 대운하나 대북정책 등에서 있어서 이미 별개의 목소리를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이건 큰 성과입니다. 대중투쟁이 이 정도 성과를 얻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실 앞으로의 대치전선은 대운하나 의료보험 민영화, 공영기업 민영화 등 거대 이슈보다 이명박계의 KBS, MBC 등 방송 장악 시도라는 마이크로 이슈를 놓고 형성될 것 같습니다. 대운하 등은 워낙 큰 이슈이고, 이명박 정권이 당장 손을 대기에는 부담이 큰 사안이거든요. 촛불시위로 깊은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는 전면적으로 들고나오기 부담스럽죠. 당분간 수면 아래에서 작업을 하다가 나중에 상황 봐서 치고나올 것 같구요... 그러한 모든 작업의 전초전으로 언론 특히 방송 장악을 최고의 선결과제로 꼽고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다음 세무조사 등 인터넷 여론 대응도 속도를 높일 것 같구요...

지금 KBS 정연주 갈아치우는 것... 정권 차원의 공략 과제입니다. KBS를 장악하면 이후 MBC에 대한 작업(장악하거나 무력화시키거나)은 훨씬 쉬워질 것으로 봅니다.

좌우의 입장 차이를 넘어서 KBS에 대한 이명박정권의 작업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이미 신뢰와 권위를 상실한 이명박 정권은 이후 철저하게 반민중/반민주/반민족적인 태도를 노골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어차피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국정 운영은 물 건너갔다고 보게 될 거라는 거죠. 그 뒤에 남는 것은 대중과의 적대적 관계 형성입니다. 대중을 속이거나 아니면 위협하거나 아니면 굴복시키거나... 겉모습은 약간씩 다르겠지만 본질은 동일하죠. 바로 대중과의 적대적 대립관계 형성입니다.

어쨌든 이명박 정권은 그 정치적 생명을 거의 상실했다고 봅니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합법성과 정통성을 가진 정부로서의 성격을 급속히 상실하고 있다는 거죠. 이것이 이번 촛불집회에서 반이명박 진영이 얻은 최대의 성과이며, 이명박 진영이 가장 결정적으로 상실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많은 분들이 미련을 갖고 계시는 것... 그래도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부인데 꼭 퇴진이나 탄핵을 말해야 하느냐... 맞는 말입니다만, 지금으로선 정치는 생물이란 말이 더 정확한 규정성을 갖는 것 같습니다. 합법성과 정통성을 가진 정부라는 기본적인 전제가 이번 촛불시위를 통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 그런 정세변화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by 구오스 | 2008/06/13 13:46 | 트랙백(1) | 핑백(1)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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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 쯤에서 다시 기억의 재구축을 논한다.
오늘의 촛불을 증언합시다. 10여년 전쯤에는 소위 "우파" 라고 자칭하는 진영에서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재구축에 들어갔습니다. 건국 50주년을 기념한다면서 이승만을 기점으로 하는 "반공국가"와 "산업화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에 대한 기억을 재구축한 것입니다. 오늘날 나오는 뉴라이트 교과서와 "군사독재 세력을 산업화 세력"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류의 주장은 이러한 바탕 위에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프레임은 오늘날의 현실에도 적용되어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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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2008년의 오늘, 시민은 이명박 정부의 막무가내 행정과 국민에 대한 소통거부에 반대하여 촛불을 들고 거리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곳에서 이슈 파이팅을 펼쳤고, 이슈에 대한 이명박 정부와 시민간의 상호작용 끝에서 "이명박 퇴진"이라는 구호를 끌어내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촛불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공"프레임을 덧입 ... more

Commented by 사발대사 at 2008/06/13 13:49
이오공감에 추천합니다.(__)
Commented by MoGo at 2008/06/13 14:11
그렇죠. 내각 일괄 사임, 땅바닥에 떨이진 이명박의 지지도와 권위라는 가시적 성과만으로도 시위의 성과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면에 가시화 되지 않은 것들은 또 어떻고요. 이제는 이번 시위가 남긴 것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말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Commented at 2008/06/13 15:1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6/13 15:4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메이 at 2008/06/13 19:40
이번 시위가 어떻게 이명박 정부의 합법성과 정통성을 바꾸게 되는 겁니까? 이명박 측에서 당선 표를 조작한 사실이라도 드러났나요? 아니면 대의제의 기본인 자유위임의 원리 따위 갖다 버리고, 국민 마음에 안 드는 정책 추진하는 정부 따위 무조건 비토 놓아도 된다는 겁니까?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무능과는 별개로, 합법성은 그렇게 쉽게 논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Commented by 대통령의합법성 at 2008/06/13 19:59
합법성에 대해 쉽게 논할 수 있는 근거를 하나만 들어보겠습니다.

이명박이 현대건설 상무로 재직하던 당시에 건설 비리 관련해서 수배령이 떨어진 적이 있고, 당시 신문에 났던 기사는 이명박 퇴진운동 카페에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주소는 검색 활용하시고)

위와 같은 법 위반 사실에 따라 지난 대선에서 후보 등록 요건에 어긋났음에도 불구하고, 당 후보자는 그 사실을 속이고 경찰 당국은 신원 조회 과정에서 이를 방조하였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전과 14범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니고 있는 현 대통령을 두고, 합법성 운운하는 반론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궁색한 옹호 발언이라고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메이 at 2008/06/13 20:21
1. 전 이번 시위랑 합법성 논의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얘기를 했는데, 무슨 엉뚱한 논리를 펴시는 겁니까?

2. 그래도 일단 하신 말씀 검토해 보지요. 이명박 대통령에게 수배령이 떨어졌는지 안 떨어졌는지 그건 모르겠는데.....

공직선거법 제19조 (피선거권이 없는 자) 선거일 현재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피선거권이 없다.
1. 제18조(선거권이 없는 자)제1항제1호·제3호 또는 제4호에 해당하는 자
2.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고 그 형이 실효되지 아니한 자
3. 법원의 판결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여 피선거권이 정지되거나 상실된 자

어딜 봐도 수배된 것만으로 피선거권이 박탈된다는 내용은 없는데요? 이 조항 말고 당선 무효에 관해 언급한 다른 조항들도 있지만 모두 확정판결을 요건으로 하지, 수배를 요건으로 하는 경우는 못 봤습니다만.
Commented by FELIX at 2008/06/14 03:45
이명박 대통령은 법적으로는 피선거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실재로 박탈당했구요. 다만 DJ가 특별 사면하면서 다시 복권된 것 뿐입니다.
Commented by 메이 at 2008/06/14 12:31
사면, 복권되었으면 그걸로 피선거권 회복되는 거 아닙니까. '가질 수 없습니다'라기보다는 '가질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는 게 오해의 여지가 없을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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