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신뢰와 권위의 위기

 
신뢰와 권위... 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이명박 정권이 부닥친 위기의 본질을...
 
과거처럼 대통령이 물리력을 기반으로 통치할 수 있는 시대는 진작 지났습니다. 불행히도 이 정부는 자신들의 통치 수단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어떤 방식으로 통치해야 하며 어떤 방식은 이미 사용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아니, 그런 식의 개념 자체 그런 식의 생각이 필요하다는 인식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 마디로 철저하게 준비 안 된 정권, 자격 없는 정권이었던 겁니다.
 
물리력을 동원할 수 없다는 것... 이미 1987년에 완전히 검증된 사실입니다. 당시 전국적인 시위 사태를 계엄 등 군부대 동원으로 진압할 수 있었다면 전두환은 그런 수단을 동원했겠지요. 하지만, 전두환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렇게 했다면 아마 수구세력은 일거에 몰락했을 겁니다. 자신들이 죽을 수를 낼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20년 전의 파쇼들도 그 정도 판단력은 갖고 있었습니다. 그 판단이 이후 10년간 보수 정권을 연장했다고 봐야 합니다.
 
1987년에 불가능했던 물리력 동원이 지금 가능하겠습니까? 뭐 굳이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조갑제나 서정갑(맞죠?) 등 또라이들은 지금도 진지하게 '신성한 군인들'이 작심하고 나서면 일거에 판을 정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겁니다.
 
이런 또라이들이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우파들이 계실 겁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이 우파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비중을 갖고 대표합니다. 단적으로 말해 보수세력이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으로 조갑제 무리들의 주장 외에 다른 방안을 제시한 적 있나요? 아닌 것 같습니다. 진보언론이 악의적으로 조갑제 등만 키워주는 탓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아닌 것 같군요.
 
이명박 등 정권의 핵심 인사들도 아무 대책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말 그대로 보수세력은 1987년 이후 단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 겁니다. 아니, 오히려 퇴보했어요. 적어도 1987년의 보수세력은 물리력을 포기하고 선거에 승부를 거는 건곤일척의 결단을 내릴 정도의 판단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정권을 잡은 무리들은 바로 그러한 1987년의 결단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현재 대중들의 요구를 전혀 이해하거나 관리할 수 없는 친구들이라는 겁니다. 도덕성은 둘째 문제입니다. 말 그대로 대가리가 너무 허접한 겁니다. 지금 촛불시위 대처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실은 완전 무대책입니다. 알고 있는 방법은 물리력 동원뿐인데, 보니까 그걸 쓰면 끝장이란 말이에요. 그러니 이것도 저것도 못하고 그저 전경버스 연환계로 묶고, 컨테이너 쌓아올리는 짓이나 하고 있는 겁니다. 이건 전혀 해결책이 아니죠. 맹장염에 빨간약 바르는 식이에요.
 
한 마디로 무능하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무리들입니다. 딱 100일만에(실은 인수위 시절부터 시작된 거지만), 대중들이 그걸 알아차린 겁니다. 이 무리들이 도무지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 거에요.
 
정권을 유지하려면 신뢰와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흔히 하는 말로 '영'이 서질 않아요. 무슨 소리를 해도 공무원들, 대충 개기고 지들 알아서 하게 됩니다. 이거, 결코 제압할 수 없습니다. 고급 직업 공무원들이 장관 등 정무직들 데리고 노는 것, 일도 아닙니다.
 
이명박이 대충 대통령직 유지하고 청와대에서 5년 지내고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허수아비 정권, 식물 정권이 될 거라고 봅니다. 허수아비 세워놓고 공무원들이 하는 짓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책임은 모두 위에다 넘기고 자기들 잇속 챙기기에 나섭니다. 차라리 대통령 유고 상태가 낫습니다.
 
전에도 얘기한 것처럼 이명박은 원래 지지층이 없는 정치인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그를 지지한 사람들은 지지한 게 아니고 실은 베팅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이명박에게 위기가 닥치니 그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빠져나가는 정도가 아니고 대번에 돌아서서 씹어대기에 바쁩니다. 조중동 논조 보세요. 구명도생에 바쁜 쥐새끼들의 행태 그 자체입니다.
 
그나마 이명박이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공무원과 테크노크라트들을 꽉 잡는 것이었는데... 이명박은 취임하자마자 그들을 적으로 돌리기에 바빴으니... 헐~~ 도무지 대책이 안 서는 친구들이었던 거죠.
 
취임 초기의 이런 시련이 약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도 대통령이 상당한 학습능력을 갖고, 최소한의 신뢰와 권위는 유지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겁니다. 이명박은 학습능력이 수준 이하라는 것이 드러났구요, 신뢰와 권위는 완전히 추락했습니다. 이명박 자신부터가 흔들리는 모습을 대중들에게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요. 이명박 지지층은 특히 권위에 민감한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모습... 굉장히 민감하게 알아챕니다. 이명박 지지그룹에서 탈출하는 대열들에 점점 더 가속도가 붙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명박이 하야하는 게 낫습니다. 물론, 국가적으로 엄청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적당한 선에서 수습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어요. 어떤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겁니다.
 
결국 박근혜 좋은 일만 하게 될 거라고 우려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박근혜는 보수세력을 막다른 골목으로 이끌고 갈 지도자입니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가 권력 잡는다고 해도 그렇게 나쁜 결과는 아닙니다. 대한민국 보수세력이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카드가 될 것 같으니까요. 적어도 앞으로 20년 동안은 말입니다.
 
이명박이 정권 계속 유지한다 해도 나는 사실 별로 불만 없습니다. 전에도 한번 썼지만, 이명박 정권은 오래 끌면 끌수록 보수층의 짐, 악재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명박이 오래 버틸수록 보수진영의 골병이 깊어진다는 겁니다. 저로서야 기쁘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뭐, 별로 반대할 이유도 별로 없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by 구오스 | 2008/06/11 10:46 | 트랙백 | 덧글(3)

트랙백 주소 : http://teralux.egloos.com/tb/454629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다비 at 2008/06/11 11:22
운하랑 민영화랑 외교삽질 나라망신 한달만 더 계속되면 전 머리가 하얗게 빠질거예요 -_-; 빨리 바뀌어야 신문 안 보고 살지 ㅠㅠ
Commented by 양초 at 2008/06/12 01:18
박근혜총리론은 일타쌍피가 되는 건가요?
보수세력이 내놓은 마지막 카드라면...그것도 괜찮을 것 같내요..
Commented by 인형사 at 2008/06/15 07:10
과거 군사독재정권은 비록 폭력으로 집권을 했어도 정통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죽이는 것은 피하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한 사람의 죽음이 정권의 몰락을 가져오기도 했고요.

이 말을 뒤집으면, 형식적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는 정권은 상당한 유혈을 초래하고도 생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과연 그 역이 성립할 것인지 상당히 우려하며 사태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번에 전혀 새로운 정치방정식이 등장할지도 모르지요.

일단 상황은 현재 소강국면인 것 같지만 앞으로의 전개는 예측할 수 없군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