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14일
이명박의 사기 본능 (3)
부지런함과 적절한 연출력을 결합하여 이명박은 샐러리맨의 신화가 될 수 있었다. 대중들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비춰진 허상에 열광할 뿐, 그 후일담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법이다. 물론 이명박과 직접 같이 일하거나, 그의 직접 고객이 되었던 사람들은 그의 실체를 늦게나마 깨닫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렇게 이명박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는 사람들은 매스미디어로 간접적인 이미지만을 받아들이는 대중에 비해서 항상 소수일 수밖에 없다. 추악한 실체의 파악에는 오랜 시간과 고통스러운 과정이 필요하지만, 잘 포장된 허상은 훨씬 받아들이기 쉽다. 짧은 순간에, 달콤한 대리 만족을 통해 가짜 이미지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정보 전달의 경제성과 효율성이란 점에서 비교가 안 된다. 그러니 진실과 허위의 대립에서 항상 허위가 승리하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이명박의 필승 출세 방정식이었다.
이명박의 출세 방정식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얼마 전 문제가 된 황석영의 사례에서도 다시 한번 입증됐다.
김대중은 노무현의 사망 이전까지도 "지난 대선 선거운동 당시 이명박이 찾아왔을 때 몇 번이나 햇볕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시했다"며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주위를 수구 색깔의 인사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대통령이 소신껏 대북정책을 펼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의미의 발언을 몇 차례에 걸쳐 한 바 있다.
김대중의 이러한 발언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노회한 노정객으로서 이명박이나 현 집권세력에 대한 일종의 회유전략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 손으로는 볼을 쓰다듬고 다른 손으로는 뒷통수를 치는, 고도의 압박용 발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이명박의 발언을 실제로 믿었다기보다, 저런 식의 '믿어주기'를 통해 오히려 대북정책의 변화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이명박 정권의 정책 변화를 유도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까지 감안한다 해도, 김대중이 적어도 어느 시점까지는, 최소한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이 김대중을 찾아와 공손하게 한 말씀 경청하는 식의 제스처를 취했을 때만 해도 어느 정도 이명박의 판단력이나 정책 마인드를 믿었던 것 같다. 김대중의 성향으로 봤을 때 이명박의 대북정책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드러날 것으로 명백히 판단했을 경우 지금보다 훨씬 빨리, 훨씬 더 분명하게 반대와 경고의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날렸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내 짐작에 이명박은 김대중을 만났을 때 정말 입 안의 혀처럼 달콤하게 햇볕정책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표명했을 것으로 본다. 안 그럴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한 표라도 아쉬운 판에 여전히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는 정치인 김대중과 일부러 척을 질 필요는 없다. 이명박에게 소신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박 같은 인간에게 '소신'은 삶의 기준이나 원칙 또는 목표라기보다는 잘먹고, 잘살고, 출세하는 데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일 따름이다. 물론 이명박도 가끔 소신이란 게 필요해진다. 어떤 경우일까? 그건 김대중이나 노무현 같은, 일정한 소신(그게 얼마나 정확하고 의미있는 것인가는 둘째 문제이다)을 갖고 있는 인간을 만나 뭔가 얻어내야 할 경우이다. 이럴 때에는 없는 소신이나마 있는 척 꾸며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이명박의 사기 본능이 발휘된다.
이명박은 소신 따위는 가져본 적이 없다. 스스로 '실용주의자'라고 포장하는 게 실은 '소신이 무슨 말인지도 모른다'는 고백이다. 이명박의 '실용'은 "이해관계에 따라 내 맘대로 언제든지 원칙과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선언일 뿐이다. 그러니 김대중의 햇볕정책에 그 정도 공감을 표시하는 것이야 요즘 애들 말로 '껌'이다.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과 김대중의 만남에서도 이런 사실은 잘 드러난다. 이명박이 김대중을 면담하고 나와서 두 사람의 발언을 소개하는 언론 보도에는 [이명박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햇볕정책도 보다 합리적으로, 북한의 태도 변화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고 소개됐던 것이다. 이 보도대로라면 이명박은 김대중의 면전에서 김대중의 상징과도 같은 햇볕정책을 전면 부인하고, 그 정책을 완전 폐기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당시 언론보도에 소개된, 이명박이 김대중을 만나 했다는 발언은 상식적으로 판단해 극히 현실성이 떨어진다. 대통령 선거전에 나선 제1야당의 후보가 전직 대통령을 만나 인사를 드리는 자리에서 그 전직 대통령을 상징하는 정책에 대해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을 한다? 상상하기 어려운 얘기다. 그 전직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현하고자 할 때는 아예 방문 자체를 하지 않는 정도가 실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일 것이다.
결국 이명박은 김대중 앞에서는 햇볕정책을 적극 지지한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김대중을 만난 뒤 기자들 앞에서는 "햇볕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는 식으로 사기를 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대중과 언론들 모두 이명박의 사기질에 넘어간 셈이다. 물론 김대중이나 언론 모두 어느 정도는 '알면서도' 넘어가준 측면도 있다고 본다. 설혹 그랬다 해도, 이명박 역시 김대중이나 언론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 역시 분명하다.
황석영도 마찬가지다. 이명박은 황석영을 만난 자리에서 황석영의 과거 행적과 현재의 문학적 위상 전부에 대해서 극진한 존경심을 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국의 대통령 그것도 보수세력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통령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 대통령을 자신의 영향력으로 '개과천선'시킬 가능성이 보였을 때 황석영 '작가 선생'께서 느꼈을 흥분과 기대감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황석영이 2+1이니, 평화열차니 하는 할리우드 공상과학 블록버스터 냄새가 풀풀 풍기는 아이디어를 자랑스럽게 펼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내 짐작이 맞는 것 같다. 순진한 황석영 선생... 작가들은 원래 순진하다.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작가도 얼치기 사기꾼에게 당하기 딱 좋은 심성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작가들의 특성 가운데 하나인 낭만적 환상은 사기꾼 등 기생충류들에게 최적의 서식처가 되곤 하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아마 김정일을 만나도 김일성 수령의 위대하신 영도력과 과거 사회주의 조국의 위대한 성취에 대한 공감,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 북반부 조국의 인민들이 역경을 뚫고 나온 그 창발성과 인내심 그리고 그렇게 탁월한 조국 인민들의 내재적 가능성을 실제로 현실화시킨 김정일 지도자 동지의 위대한 리더십에 감복 감읍 감탄하는 헌사를 입밖으로 내비침에 있어서 추호의 망설임도 없을 것이라는 데 감히 100원을 건다.
하지만 그때 뿐이다.
그 자리를 뜨면 이명박은 잽싸게 입을 씻는다. 기자들 불러 '준엄하게' 북한의 난동을 꾸짖고, 김정일이 앞으로 개과천선하여 선진조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자신의 영도를 받도록 교시하였노라고 냄새를 풍겨댈 것이다.
치고 빠지기, 싸구려 물건 비싸게 팔아먹고 잽싸게 도망치기, 다른 데 가서 더 크게 사기치다가 과거 피해자들이 몰려와 항의하면 지금 자신들에게 속고 있는 사람들을 부추겨 과거의 피해자들을 다구리 놓기... 이것이 이명박의 필승 출세전략이다. 세상은 넓고, 사기 칠 일은 많다. 뿐이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언제든 사기에 넘어가기를 원하고, 사기 당하기를 학수고대한다. 바로 이것이 이명박이 항상 사기를 치고 폭로가 되면서도 항상 해피한 이유이다.
# by | 2009/07/14 13:23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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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