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사기 본능 (1)

1970년대부터 정주영 회장과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람이 당시 정 회장과 가진 술좌석에서 이명박을 소개 받았다고 한다. 정 회장이 이명박을 소개하는 코멘트는 이것이었다.

"대한민국 24만 1번째 사람."

저 숫자가 2만인지, 24만인지 또는 240만인지는 기억이 분명치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저 숫자가 당시 대한민국의 기업체 수 전부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즉, 정주영 회장이 이명박을 소개하는 발언의 요지는 "대한민국 월급장이로는 넘버원"이라는 것이었다.

'월급장이 넘버원'이라는 것은 대단한 칭찬이다. 저 정도 칭찬을 들었으니, 대한민국 모든 월급장이들이 동경하는 역할 모델과 목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명박이 그 '샐러리맨 신화'라는 브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대통령까지 꿰차게 된 것... 다들 잘 아는 사실이다.

이명박은 현대건설 시절 회계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그때 이명박이 가장 신경을 썼던 것 가운데 하나가 정 회장의 비서(나중에 현대증권 CEO로 '바이코리아' 돌풍을 일으켰던 이익치가 당시 비서였다고 한다)를 통해 정주영 회장의 스케줄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정 회장이 새벽에 일찍 나가는 일정을 파악, 현대건설 회계 분야의 쟁점을 챙겨서 정 회장의 출근 시간에 맞춰 집 앞에서 대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문을 나서는 정 회장의 승용차 앞에 등장,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긴급한 사안인데, 상의를 드리고 싶어서 찾아뵈었습니다..." 이렇게 말을 꺼낸다. 과연 그 문제가 꼭 그렇게 꼭두새벽에 정주영 회장을 만나서 보고해야 할만한 사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게 중요했을 것 같다. 내가 정 회장의 입장이라 해도 그렇게 이른 새벽부터 회사를 위해 오너에게 쫓아오는 부하 직원이 무척 기특하고 대견했을 것 같다.

이런 에피소드에서 이명박의 성격과 장점 즉, 이후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을 보는 느낌이다. 부지런하다는 것은 여기서 별 이슈가 아니다. 출세를 위해 부지런하게 뛰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에 너무너무 많다. 너무 부지런해서 다들 쓰러지기 직전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오히려 이명박의 이 에피소드에서는 성과 자체보다는 그 성과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최대한 극적으로 포장해 보여주는 연출력을 본다. 여기에 이명박 신화의 비밀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명박이 탤런트 출신 유인촌을 총애하고, 영화 <워낭소리> 보면서 "내가 실은 문화적 소양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식의 코멘트를 한 것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나름 이해가 간다. 이명박, 연극적인 소양이 꽤 있는 친구이다.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명박의 출세 공식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대한민국 월급장이 넘버원'이라는 표현은 이명박의 장점과 함께 이런 문제점도 동시에 짚고 있다. 정주영 회장은 왜 이명박의 능력과 경영자적 자질을 칭찬하는 표현으로 '대한민국 월급장이 넘버원'을 사용했을까? 기억해야 할 것은 이 표현의 방점은 '넘버원'이 아니라 '월급장이'에 찍혀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기업이 2만 개면 2만 1번째, 24만 개면 24만 1번째, 1천만 개면 아마 1천만 1번째라는 표현이 이명박의 몫이 됐을 것이다.

오너는 기업의 최종 실적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진다. 거기에는 주주들에 대한 책임과  종업원들에 대한 책임 나아가 법적 사회적인 책임이 모두 포함된다. 하지만 월급장이는 자신이 맡은 업무에 대해서만 부분적으로, 그리고 상사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

정주영 회장의 '대한민국 월급장이 넘버원'이란 표현은 바로 이 문제 즉, 이명박의 책임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에 아무리 자잘한 기업이 많아져도 이명박은 그 우두머리, 최종 책임을 지는 자리에 앉을 '그릇'은 못 된다는 평가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현대건설 같은 대기업이 아니라, 그만그만한 규모의 중소기업 아니 동네 슈퍼마켓이라 할지라도 전적인 자기 책임 아래 운영할 인물은 못 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통찰이 얼마나 핵심을 꿰뚫고 있는지는 이명박의 이후 행적이 너무 분명하게 입증하고 있다. 현대건설을 결국 부도로 몰고 간 이명박의 중동 프로젝트 삽질과 서울시 재정과 성장률을 전국 최하위권으로 몰고간 업적, 싸구려 기획과 눈가림 시공의 대명사인 청계천 복원과 BBK 사기사건(누가 속였고 누가 속았는지는 앞으로 두고두고 파헤쳐야 할 문제이지만)이 바로 이명박 비즈니스 업적의 실제 '랜드마크'이다.

권력과 책임을 가진 누군가가 시키는 일은 마치 제 한 몸 불사를 것처럼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연출'하지만 자신이 전적인 책임을 지고 추진하는 일은 결국 지리멸렬한 파국으로 귀결된다. 현대건설의 CEO에 오르기 전까지 일종의 '신화'로 포장된 이명박의 업적들이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라는 사실은 거의 공개된 비밀에 속한다. 실제로, 이명박이 가장 주력했던 것은 업무 자체보다 다른 사람의 성과를 자신의 것처럼 포장하고 분칠하는 작업이었다는 지적이다. 이것이 이명박 신화의 적나라한 진실이다.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이렇게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인간이 남다른 연출력과 부지런함만으로 엄청난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을까?

by 구오스 | 2009/06/22 20:40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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